[ 아래글은 지난 2004년 7월 23일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의 '여름연수'에서 강연한 것인데 다시 여름을 맞아 연수에 참가하는 지식인 들을 위하여 그대로 게재합니다.]
지식인과 변혁운동
1.
여러 선생님.
저도 대학 교단에서 추방되어 학문이 박탈되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한때 대학 강사로서 고생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냥 같은 입장의 선생님들을 만난다는 것보다 혈육을 함께 한 형제를 만난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소년시절 어린 나의 눈앞에서 조국이 분단되는 엄청난 비통을 겪고 이를 반대하여 혁명조직에 들어 손에 무기를 들고 투쟁하는 조직생활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연락선이 파괴되는 바람에 조직에서 이탈되어 집에 돌아왔고, 살기 위하여 생의 방향을 바꾸어 학문의 길에 들어 대학에서 학문에 열중하였습니다. 마침 좋은 은사를 만나 당시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학문의 길잡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과거, 드러나면 죽거나 감옥에 들어가는 과거를 안고, 그 공포를 잊기 위해서도 학문에 더욱 감싸여 젊은 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박사도 되고 교수도 되었으며 교실의 주임교수로 학자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논문을 내고 교실의 잡지(학술논문집)를 발행하여 그것으로 나와 나의 교실이 세계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
제가 변혁운동에 다시 뛰어든 것은 4.19학생봉기 이후부터였습니다.
10 년 넘도록 이승만 정권 밑에서 공포에 떨며 살았고, 때때로 함께 투쟁했던, 조국의 어느 산야에서 피지도 못하고 산화한 어린 봉오리 소년 동지들에게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워 밤새 술타령으로 지새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내가 우리들의 어린 후배가 그 포학하기 그지없는 이승만 정권을 때려눕히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버쩍 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도 일어나면 그 이승만과 같은 독재자도 때려눕히고 미국 놈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변혁운동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찾아 투쟁의 대열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나에게는 운동이 주된 사업이었고 학문은 이를 위한 한 방도로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학문에 대해서 절대 소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럴수록 논문도 열심히 쓰고 강의도 열성을 다했습니다.
나는 이때부터 내가 하는 전문분야의 연구와 더불어 변혁운동에서 필요한 지식과 이론을 확립하기 위하여 철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학습도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먼지를 들쓰고 잠들고 있는 맑스주의, 레닌주의 이론의 책을 찾아 계통적으로 공부하고 모택동사상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평양에서 방송하는 방송대학의 강의를 매일 밤 듣고 녹취하여 공부했습니다. 나의 서재는 그래서 새벽 4시전에 불이 꺼진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공부들 중에서 방송대학에서 녹취한 철학을 줏대로 하고 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출간한 철학교정, 경제학교과서가 뼈대가 되어 우리민족의 역사 공부를 살로 해서 나의 사상이 확립되어 갔으며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구현하는 사상으로 발전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나의 학습은 내 혼자의 힘으로 진행도 했지만 당시 대구지역의 진보적 청년들과 함께 책을 서로 빌려주고 빌려보면서, 그러면서 서로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서로의 이론수준을 높여나갔으며 그러는 중에 서로의 사상을 함께 하면서 동지로 되어 갔습니다.
3.
당시 우리는 비록 어떤 조직을 형식화해서 결성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여러 운동에 핵심적 부분을 담당하면서 청년학생, 노동청년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면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지역의 정치운동 등 여러 부문에 영향을 끼치며 이론적으로 물질적으로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로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을 맡았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고 조국의 통일을 열원하는 학생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세우고 이들에게 학습과 그 조직화를 지원하고 투쟁을 후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 운동을 단순히 지원하는 것이었으나 점차 조직적으로 방조하는 사업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래서 [정진회], [정사회]라는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주화운동과 자주적 통일운동을 위한 학생운동의 핵심으로서의 동아리를 조직 지도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삼선개헌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의 핵심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1970 년대에 들어서자 박정희 파쇼도당은 대학 안에 있는 모든 사회과학연구 동아리와 학생운동의 동아리를 강제 해산했습니다. [정진회], [정사회]도 해체 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동지들은 단순한 학술연구의 동아리로 위장하여 [한국풍토연구회](약칭 [한풍회])를 조직했습니다. 지도교수도 지극히 무난한 교수를 초빙하여 겉으로는 운동과 전혀 무관한 동아리로 위장하고 학생운동의 핵심을 꾸려나갔습니다.
이들의 학습과 회합은 산이나 바다에서 천막을 치고 등산이나 관광을 가장해서 열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유신반대운동'의 핵심으로 성장되었던 것입니다. 운동도 파쇼정권의 탄압에 맞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법을 창조해서 영활하게 전개해 나가 한때 파쇼당국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나의 학생운동에 대한 지원을 눈치채게 되었고 파쇼당국은 나를 76년 2월에 처음 실시하게 된 교수재임명제에 걸어 이른바 '국가관 미확립'과 '정부정책 비협조'를 이유로 들어 대학으로부터 추방했습니다.
한 학기를 지나고 나서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대우라지만 강사로 임명받아 강의하다가 이듬해 새 학년에 교수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이재문 동지와 신향식 동지들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직업적 변혁운동가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그것도 사형수로 두 번 있었고 무기징역을 두 번이나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밖에 나와 있지만 내 어깨에는 남은 잔형 27년이라는 무거운 징역을 걸머지고 있는 형집행정지자, 보안관찰대상 좌익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는 사람입니다.
4.
저 자신의 자기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여러 분들이나 저는 지식인이라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의 사회적 본질을 잘 알고 그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지식인이라는 본질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와 같은 좋은 자리에서 지식의 본질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지식인'이란 한마디로 해서 정신노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외국에서는 '인텔리겐챠', 이로부터 외래어로 줄여서 '인텔리'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지식인이라서 그런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과 유다르게 말하기도 합니다만 육체노동으로만 삶을 영위하지 않고 주로 정신노동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객관적인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인으로 들게 되는 사람들로는 기사, 기수, 전문가, 의사, 예술가 등 자연 및 사회과학부문의 정신노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하게 되겠습니다.
이러한 지식인은 사람의 생산노동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갈라지고 정신노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발생했던 시대인 노예제사회에서 발생하여 봉건제사회와 자본제사회로 거쳐왔습니다.
지식인은 여러 계급의 출신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의 지식인 가운데는 자산계급출신의 지식인들도 있고 소자산계급 출신의 지식인들도 있으며 그 수는 얼마 안되지만 노동자, 농민 출신의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계급의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식인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계급으로 이루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이러저러한 계급에게 복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인은 그 입장이 그가 속한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데로부터 다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자본주의사회에서 지식인들은 주로 자본가계급을 위하여 복무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주권과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자본가계급에게 복무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에서 나오는 피치 못할 현상입니다.
자본주의사회의 지식인들은 대부분이 자기가 가진 지식을 팔아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이 바로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지식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차별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마치 상품이 차별화 되고 경쟁이 일어나고 그래서 독점화 되듯이 지식도 경쟁화되고 독점화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남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해 그것의 진리성은 도외시하고 자기는 그것과 다른 이론을 내어놓아야 하고 차별성을 강조하게 되고 독점화로서 지식에 대한 이해관계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바로 남보다 더 높은 지위로 올라서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으며, 그 지위는 자본의 이윤을 올리기 위한 능력으로 담보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이 남보다 더 자본의 요구에 충족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생활을 더 유족하게 하는 수단으로 되고 그것은 사회적 지위와도 관계되며 또 높은 명예와도 연관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의 지식인들은 대부분이 경쟁상태 속에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과 이론의 가치를 그 진리성에서보다 경쟁에서 이겨 남의 위에 올라서는 데에 두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지식인들 사이에는 출세주의, 영웅주의, 배타주의 등 온갖 지식의 진리성이라는 본질과는 유리되는 부정적인 작풍이 만연되고 있습니다.
6.
그러나 아주 적기는 하지만 자본가계급을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선진적이고 혁명적인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사회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정신노동에 의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로부터 올바르게 얻어진 창조적인 사상의식에 의하여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인식하게 되고 그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도를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뒤떨어진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의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민족적 억압과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일정하게 혁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식인들은 노동자, 농민들을 교양하고 그들의 처지를 개혁하는 투쟁으로 나서게 하고 그들을 혁명운동에 다리를 놓아주는 교량자적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식인들 자신의 민족적 해방이 노동자, 농민들의 해방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혁운동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대단합니다.
변혁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것도 전혀 사람들이 걸어보지 못했던 길을 열어나가는 일입니다. 변혁운동에 참가한 지식인은 변혁운동의 사상의식을 창조하고 운동의 전략전술을 내와서 운동의 과학성을 보장해줍니다. 특히 특출한 운동가는 그 시대의 새로운 변혁사상을 창조하고 운동을 영도해나갑니다.
마르크스주의 사상도, 레닌주의이론도, 모택동사상도, 월남 호지명의 인민전쟁이론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주체사상도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그들이 그 시대의 변혁운동을 영도해나가는 가운데 창조된 빛나는 이론체계들입니다.
변혁운동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만큼 그것을 창조하는 사람 역시 전혀 새로운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마다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것도 미제의 예속식민지사회에서 자랐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사회의 이윤추구라는 본질에서 개인주의, 자유주의, 출세주의에 푹 젖었고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 생기는 소외로부터 허무주의와 냉소까지 안고 있으며, 식민지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사대굴종 노예주의까지 싸잡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변혁운동, 새 세상을 창조하는 사업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변혁운동을 하는 지식인은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식민지사회에서 얻어진 변혁운동에 부정적인 사상을 청산하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자기개조를 이루어내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 변혁운동의 대열에 자기개조사업을 옳게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바로 분파현상으로 나타나 운동의 통일단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리가 아무리 명백하다 해도 운동에서 차지하려는 헤게모니에 눈먼 사람은 그 올바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와 해를 따르는 자본주의사상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차지한 지위와 그 보잘것없는 안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센 놈에게 빌붙는 사대굴종의 사상이라는 식민지사회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혁운동은 이러한 사상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통일단결을 이루어낼 수 없고 새롭고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을 모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7.
여러 선생님들.우리들은 반백년이 훨씬 넘는 민족분단과 미제의 식민지통치 시대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통일과 해방의 시대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6.15공동선언으로 그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역량이 미제의 전쟁책동을 막아내고 미제를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 만큼 강성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분단과 예속으로부터 해방되는 마지막 투쟁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 우리시대에서 우리가 할 일은 지난 세월 친일잔재와 사대매국노들 그리고 군사깡패들이 가꾸어온 반통일 반민족세력으로부터 자주적 민주정권을 쟁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미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보람차지만 아름차기도 합니다.
이 시대, 우리시대의 지식인에게는 이 민족적 역사적 대사업에 참여하여 민족대단결의 운동에서, 예속에서 자주의 나라로 나아가는 해방운동의 길에서, 우리시대에서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일에서 지식인들이 지식으로 헌신하는 일이 놓여 있습니다.
2004 년 8월 1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