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강의안
[이 글은 2003년 5월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특별강의 초청을 받아 강의한 내용입니다. 거기에는 공안검사, 공안경찰간부, 군 기무사령부 요원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은 이 강의를 거절하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들이 주체사상을 반공강연식으로 알고만 있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이들에게도 이북 동포들의 사상을 바로 알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강의하고 난 후 질의응답에서 진실을 담아 강의해준데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고 특히 고난을 그처럼 겪고서도 자기 뜻을 당당하게 펼치시는 데에 존경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이 강의에서 외세가 개입하지 않고 우리민족끼리라면 어느 누구와도 통일문제를 가슴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뜻밖에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의 요청으로 이북의 주체사상을 강의하기 위하여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주체사상은 이북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주의건설과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사상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 동기유발의 근저에는 개인적 이익의 창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일신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상충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덕관념과 사회제도 그리고 법률제도로 담보되고 옹호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동기유발의 근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근면성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북은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고 있고 그것이 전인미답의 새로운 제도로 계속 새로이 창조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사회는 “하나는 만인을 위해, 만인은 하나를 위해” 활동하는 집단주의적 동기유발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자본주의사회에서도 공동체의식이 있듯이 개인적 동기유발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남보다 생산의 성과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담보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관통되고 있는 동기유발인 개인주의적 이익이 자연발생적라면 이북사회의 사회주의사회는 사상교육에 의한 집단주의적 이익을 앞세우는 의식화된 목적의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북의 사상이 바로 주체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혁명의 시기 1930년 6월 30일 카륜에서 새로운 세대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을 가지고 거기에서 항일혁명의 의의와 그 전략전술을 담은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주체의 혁명로선의 창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북 사회는 김일성 주석의 주체의 혁명로선인 항일혁명의 전통을 이어받고 그것을 구현 발전시키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 후 이북 공화국의 창건과 인민민주주의혁명도, 전후복구도,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시작인 천리마운동도, 자주국방로선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이후 엄중한 경제봉쇄와 자연재해를 극복해낸 「고난의 행군정신」도, 미사일을 만들어 미국에 대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도 모두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주체의 혁명로선과 이를 계승발전시킨 김정일 총서기의 「주체사상」을 그 사상의식의 기초로 하고 있는 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의 80년의 세월 동안이나 창조해온 주체사상의 이론을 단지 한 두 시간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학생들을 위하여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북 사회를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앞으로 더불어 살아야 할 민족의 반쪽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삶에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주체사상을 먼저 마음을 열고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경제와 문화를 교류하더라도 서로의 마음 속에 깊이 담고 있는 사상을 이해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나라로 통일을 이루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처럼 반백년만에 이루어진 민족화해와 통일의 정세를 귀중히 여기고 이북 동포들과 하루빨리 통일된 조국의 한품에 서로 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북 동포들이 마음 속에 깊이 담고 있는 주체사상을 진정으로 이해하여 화해의 문을 열어야 서로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방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 주체사상의 창시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석이 1930년대에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빨치산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하고 아무런 후방도 없이 일제의 무기를 탈취하여 그 무기를 들고 전투를 승리적으로 이끌면서 싸워온 민족해방의 투쟁 속에서 창시한 것입니다.
당시 세계정세는 1차대전 직후 경제의 호경기가 계속되다가 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져 세계적 혼란이 일어났고 제국주의는 그 불황을 파시즘체제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실제 독일에는 나치즘이,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가 번성하여 대륙침략에 나섰습니다. 이리하여 세계는 다시 식민지재분할을 위한 세계전쟁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나라였던 러시아는 독일의 침략과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려는 데에만 바빠서 작은 나라 민족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다른 제국주의 나라인 미국, 영국, 프랑스도 그들의 식민지를 간수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기에 나치즘과 파시즘 그리고 군국주의의 야수적 만행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제의 야만적인 통치를 들어 이야기할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중국도 내전에 휘말리고 있었으며 민족해방의 후원을 내걸고 있는 중국공산당조차도 나라없는 조선민족의 해방투쟁을 자기네 나라의 혁명에 이용만 했지 진정으로 힘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민생단 사건을 빌미로 많은 조선혁명가들이 희생되었고 국제공산당의 지령이라면서 동북의 조․중 민중의 동북항일연군을 열하성으로 이동하는 전략으로 조․중 민중의 부대에 들어 있던 조선혁명가들이 일제의 추격군과의 전투에서 수없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열하원정’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시기에 김일성 주석이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을 구의 주위에 모아 1926년 10월 17일 화성의숙의 벗들과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고 앞으로의 조선혁명을 위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길림의 육문중학교로 옮긴 김일성 주석은 조선혁명의 주력군인 청년학생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다시 1928년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1930년 6월 30일 카륜에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회의를 개최하고, 조선혁명은 일제를 무력으로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할 전략과 전술을 내와서 조선인민에 의거하여 조선인민의 재주와 조선인민의 힘으로 조국을 광복할 주체의 혁명로선을 담은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고 토론에 붙였습니다.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주체의 혁명조직의 건설과 항일무장투쟁의 방침을 제시했습니다. 세상은 이 회의를 주체사상의 창시로 정하고 있습니다.
「카륜회의」가 끝난 다음날 1930년 7월 3일 「카륜회의」의 방침에 따라 첫 주체형의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내왔습니다. 이는 나중에 「조선인민혁명군당중앙위원회」으로 개편되어 조선혁명의 당중앙으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엄중한 정세를 맞은 김일성 주석은 백두산 수림 속에 밀영을 묻고 일제의 백만 관동군과 위만군에게 무리죽음을 안기면서 전투를 승리적으로 인도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러한 조국해방의 전투와 혁명투쟁 가운데서 나라의 광복과 혁명은 민중에게 철저히 의지하고 조직동원된 자기 나라의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는 주체사상의 구체적 원리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고 일어난 민중의 힘은 제국주의의 어떤 힘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상을 동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세계를 변혁하는 힘은 바로 자주성을 지키려는 사상의식으로 단결되고 마를 줄 모르는 민중의 창조적 역량에 의지해야 하고, 이러한 민중의 힘에 의지할 때 어떠한 곤란도 넘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신심을 동지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이러한 주체사상은 그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로 정식화했습니다.
이 주체사상으로 영도되고 일심동체로 단결된 민중의 힘으로 이북 공화국을 창건하고 ‘근로민중을 위하여 근로민중에게 의지하여 근로민중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그 일천한 나라가 미제와 그 추종국가 16개 나라의 군대를 막아내고 이북 나라를 지켰습니다.
전후 복구와 건설에서 천리마의 기세로 나라를 튼튼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미제의 어떠할 도발도 제때에 대응하고 자주성을 지킨다는 원칙으로 일관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푸에블로호 사건만 하더라도 영해에 침범해 들어온 미제의 정보함을 즉시 나포하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협을 의연히 이겨내고 미제의 사과를 기어이 받아냈습니다. 그 후 판문점 충돌 사건, 헬리곱터 침입 사건 등 미제의 도발은 제때에 자주성을 지킨다는 원칙에 튼튼히 서서 민족의 존엄성을 지켜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져 이북이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엄청난 홍수와 가뭄으로 식량이 떨어져 이북이 곧 망한다고 언론미디어가 난리를 칠 때 미제와 그를 추종하는 온 세계의 제국주의 나라들은 이북을 봉쇄하고 핵문제를 내걸어 숨통을 졸랐으나 그 난관을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격전 시대의 ‘고난의 천리행군’을 상기하고 ‘고난의 행군’을 구호로 내걸고 이겨냈습니다. 마침내 자체의 힘으로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자체의 자재와 기술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아 민족의 무한한 힘을 과시했으며 그들은 ‘조선이 없으면 지구도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세계의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를 넘볼 수 없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들어서자 ‘고난의 행군시기’를 끝내고 ‘강성대국’이 길에 들어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의 바탕에는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된 이북 민중이 있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주체사상의 체계화 과정
백두산 밀림을 배경으로 해서 일제와 백전백승의 해방투쟁의 전투 속에서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 주석은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여 이북으로 개선하고 이북의 공화국을 건설했습니다. 조국광복회를 조직하면서 그 핵심으로 당을 건설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준비 밑에서 국내의 반일애국역량을 포섭하여 북조선 공산당을 조직하였습니다.
조선에는 1920년대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였으나 여러 종파분자들과 야심가들이 스며들어 당을 지켜내지 못하고 여러 차례의 검거로 명맥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일제에 투항하여 앞잡이로 전락한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해방을 맞아 자기의 과거를 숨기고 당에 스며들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지도로 건설된 당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는 일을 가장 먼저 앞세우는 새로운 형태의 주체형의 당입니다. 그것은 나라의 근로민중을 주인으로 하고 근로민중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김일성 장군을 수령으로 하고 수령의 뜻에 따라 일심동체로 단결된 당입니다. 그것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전 속에서 전혀 새롭게 창시한, 모든 것을 민중을 위하고 민중에게 헌신하여 민중을 유격군의 중심으로 튼튼히 묶어세우고 민중의 무한한 창조성에 따라 민중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이끌어 주는 ‘군중로선’을 관철하는 주체형의 당입니다.
물론 백두밀림에서 단련된 항일빨치산들은 일제와의 혈전에서 새로운 주체형의 당을 건설하고 수령을 모시고 수령의 뜻에 따라 당을 건설해나갔지만 국내에 있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당에 대해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김일성 주석의 새로운 형태의 당을 지지하고 옹호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남에서 미제의 새로운 식민지통치와 3년동안이나 벌렸던 침략전쟁으로 조성된 엄중한 정세를 틈타서 일제에 투항했던 반당분자와 이들과 이러저러한 친소관계로 이루어진 종파분자들이 당을 파괴하고 그들의 야심을 이루려는 반역행위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맑스=레닌주의를 교조적으로 해석하여 조선혁명을 다른 나라에 의지하거나 그들이 한 대로 따라해야 한다는 사상적 사대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라의 자립적 경제건설 정책을 비난하고 ‘기계는 선진 사회주의 나라의 것을 쓰고 소비재생산에 주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계에서 밥이 나오나 옷이 나오나’라면서 공공연히 비난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종파를 만들어 정부를 뒤집어엎으려고 획책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러한 모든 종파분자들과 사대주의에 대하여 투쟁을 전개하여 당을 주체형의 당으로 지켜나가도록 영도했습니다. 그 결과 1956년 8월 당의 전원회의에서 종파분자와 사대주의지와의 투쟁을 보고하고 수정주의 종파분자들을 완전히 청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중국에서 일어난 이른바 문화혁명과 중소분쟁에서도 이북은 나라의 자주성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식대로 혁명을 하지 않는다고 이북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말은 주체사상의 진수를 담고있는 유명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들이 의자를 만들어놓고 서로 자기 의자에 앉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의자는 결코 우리 몸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앉을 의자는 우리 몸에 맞도록 우리가 스스로 만들 것입니다.”
종파분자와 사대주의를 청산한 이북의 당은 백두밀림 속에서 일제와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창조된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체계로 하고 이북을 주체사상 이외에는 어떤 사상도 먹어들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3대혁명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회는 인류가 전혀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며 사회주의적 사상의식으로 의식화된 사람들이 창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주의사회 창조하는 데에 결코 자본주의 세계에서 길들여진 사람들이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제도를 엎어버리는 사회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사회주의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되어야 한다는 사상혁명이 일어나 사회주의적 사람으로 개조되어야 하고, 둘째 사회주의의 물질적 조건을 이루어내기 위해 생산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 기술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회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높은 새로운 사회주의적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화혁명이라는 것입니다. 사회혁명에 이어 사회주의사회를 창조하는 계속혁명은 이러한 세 가지의 혁명, 즉 3대혁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으로 이북의 민중을 정열적으로 지도하면서 그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이 내용을 담아 하나로 관철된 철학적 체계로 정식화했습니다. 그 결과를 1982년 3월 31일 김일성 주석의 탄생 70돐을 축하하는 「주체사상국제학술대회」에「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내어놓았습니다. 이 논문은 주체사상의 철학적 체계로서 고전적 문헌입니다.
3.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주체사상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인간의 운명문제에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문제에다 철학의 근본문제를 둠으로써 주체사상은 인간중심의 철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이 세계관을 주는 학문이라는 본성으로부터 철학은 바로 인간의 운명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견해를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체사상의 사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철학적 세계관의 근본사명은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 주는 데에 있습니다.”
지난 시기의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인간이 세계를 변혁하는 투쟁에서 그 승리를 과학적으로 보장하는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서 세계의 본질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철학은 세계의 존재문제를, 즉 물질=존재가 일차적이고 의식=사유가 부차적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세계의 운동발전의 법칙을 밝히는 존재론을 구성하고 인식의 본질과 그 과정의 합법칙성을 밝히는 인식론을 구성하여 과학적 철학사상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문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존재론과 인식론에 종속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도 세계의 한 존재로만 규정되고, 인간의 운명은 무엇에 의하여 규정되는가,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는 궁극적 원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문제를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논의하는 데에 머물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자연과 사회 그리고 사유의 발전에서 가장 보편적인 합법칙성을 밝혀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운명문제에서 신비주의적, 숙명론적 운명관을 걷어내게 되었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리하여 철학의 근본사명으로서의 운명문제에 올바른 해답을 줄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해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철학에서 인간의 운명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주려면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아야 하고 그 해답도 내와야 합니다. 그래야 운명개척의 합법칙성을 밝혀낼 수 있고 그 방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객관세계와 인간 자신이라고 봅니다.
객관세계는 인간이 살며 활동하는 시공간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환경과 여건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세계는 인간의 운명개척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담당자는 또한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인가, 그 본질적 특성은 어떤 것인가를 밝혀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정일 총비서는, 사람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첫째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주성을 가지고 있고, 둘째 사람은 객관세계에 존재하는 합법칙성을 인식하고 이것에 근거해서 객관세계를 개조변혁하면서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인간의 개조변혁활동은 목적의식적이며, 사상의식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의지, 즉 의식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존재라고 정식화했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한계에서 인간의 운명문제를 사회적 존재라는 존재론과 객관세계와의 관계에서 인식론에만 머물고 만다면 인간을 단순히 최고로 발달한 뇌수와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단순한 물질세계의 한 부분으로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변혁에 대한 설명은 존재의 본질과 그 운동과정 자체의 해설이라는 한계를 넘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존재로서 사회적 존재로만 보는 데에 머물지 않고, 거기에다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밝혀냄으로써 객관세계에 대하여 오직 사람만이 그 주체로 존재하고, 따라서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해명되며, 마침내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세계의 지배자로, 개조자로 내세워지는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 총비서가 심화 발전시켜 철학적 이론으로 정식화한 주체사상은 이와 같이 철학의 문제를 보는 데에서부터 맑스=레닌주의 철학과 달리 철학의 문제를 인간의 운명문제로 보았으며 그것을 밝혀내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근본원리를 정립했던 것입니다.
이는 인류사상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세계에 대한 지위를 과학적으로 해명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체사상은 어떤 사람들이 더러 말하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계승발전이 아니라 21세기의 자주의 시대를 선포하는 새로이 창조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사회역사관
주체사상에서 사회역사관이라 함은 사회역사의 주체를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노동대상이고 인간생활의 물질적 원천이며 사회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집단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사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람들 사이에 일정한 관계를 가진 객관세계에서 자연세계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회는 객관세계의 특수한 영역으로서 세계에 대해서 자주성을 구현하는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물질적 부와 정신적 부를 창조하고 활용하면서 생활하고 활동합니다.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데는 일정한 규정이 있고 이 규정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사회적 관계로 하여금 공동의 이해관계가 생겨나고 이를 토대로 단결하고 협조하며, 또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대립도 하고 투쟁도 합니다.
사람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기의 이해를 자각하고 표현하며 그 요구에 맞게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합니다. 이러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그 실현을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의지가 사상의식, 즉 사회적 사상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이러한 사회적 사상에 요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사회활동이 집단적인 것만큼 사회적 관계는 일정한 형식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 사회의 성격이 다르게 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공고한 제도도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는 일정한 제도를 가진 데에서 머물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단히 상승하고 발전합니다. 사회가 상승발전한다는 것은 사회제도가 새로운 사회제도로 교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체사상에서는 사회의 상승발전, 즉 사회제도의 교체는 사회의 주인인 사람의 자주성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원시사회로부터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제사회로 발전해온 인류의 역사는 예속에서 벗어나 사회의 주인으로 살려는 사람이 가진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을 구현하려는 자주적 요구에 기초된 것입니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사회역사관입니다.
주체사상은 사회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한 사회역사관을 토대로 하는 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가진 철학입니다.
사회역사의 주체로 민중을 내세운 주체사상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자주성을 구현하기 위한 운동을 내세웁니다. 그것은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원리에 따라 전개하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바로 객관세계를 사람의 요구에 맞게 개조변혁하는 운동입니다. 자연에 대해서는 자연개조,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개조, 사람에 대해서는 세계의 주인으로 의식화된 새로운 자주시대의 사람으로 되는 인간개조의 운동입니다. 이러한 변혁운동이 사회혁명, 과학기술혁명, 인간혁명이라는 3대혁명이라는 것입니다.
5. 영도예술
맑스주의 철학에서 필연성과 우연성의 범주를 놓고 수령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에서는 객관적 필연성이 제기되면 수령은 나오게 되고, 누가 수령이 되는가라는 문제는 우연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심지어 맑스가 19세기 노동계급의 수령이 된 것은 우연적이고, 객관적 필연성이 제기되면 맑스가 없어도 다른 디츠겐이나 모르간이 수령으로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사는 영웅을 내지만 영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면서 주장했습니다. 즉 역사에서 제기되는 혁명의 필연성과 거기에서 혁명을 지도하는 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수령이라는 우연성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이론에서는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게 되고 그 저항운동은 궁극적으로 사회혁명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저항운동을 혁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회혁명의 전위계급인 노동계급의 지도로 다른 계급계층과 동맹해서, 특히 농민과 동맹해서 강성한 역량으로 착취계급을 압도함으로써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혁명의 역량을 조직화하기 위하여 혁명의 사령부인 당이 노동계급의 지도로 조직되고 당의 지도에 의해 다른 계급계층을 하나로 묶어 혁명대열에 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지도자로서의 수령은 그 조직에서 특출한 능력을 가진 자로서 나오게 되고 그의 능력의 발휘로 힘있게 전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은 객관적 필연성에 의해 제기되고 그렇게 되면 수령은 나온다는 것입니다. 혁명에서 수령이 나온다는 것은 필연성이지만 어떤 개인이 혁명에서 지도자로 된다는 것은 그러한 필연성에 대해 우연성이라고 했습니다.
주체사상에서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하는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민중이 조직되고 사상적으로 결속되어야만 역사와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령이 사상의지의 결속, 변혁조직의 결집의 구심점으로 있어 민중과 수령이 운명 개척의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만이 민중이 역사의 참다운 주체, 즉 자주적 주체로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수령은 역사의 자주적 주체의 내적 구조로서 보아야 하고 수령, 당, 민중으로 구성된 역사의 자주적 주체의 중추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볼 때 수령은 주체의 중추, 즉 뇌수이고 당은 심장이며 중추의 의지에 따라 맥박쳐서 생명체의 구석구석 빠짐이 없이 생명의 피를 보내줌으로써 민중이라는 주체가 비로소 세계를 개조변혁하는 운동의 통일체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체사상의 수령론은 간고한 항일투쟁 속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수령이 주체의 의지를 사상의식적으로 담보하고 생명체로서의 민중의 고통과 원망을 구석구석 깊이 알고 있으며 그 고통을 함께 겪고 민중과 일심동체로 살면서 창조해낸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에서 어버이가 자식들이 말하기에 앞서 그리고 자식들의 요구에 앞서 이미 그것을 알고 어루만져주며 자식들은 어버이의 바램을 위해 효성을 다하듯이, 주체사상은 나라를 하나의 대가정으로 보고 수령이 어버이로서 인덕정치를 펴며 당과 민중이 함께 어버이의 뜻을 따라 효성을 다하는 대가정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6. 주체사상의 나라로서의 이북
김일성 주석이 영도하고 김정일 총비서의 지도에 의해 주체사상이 관철되고 있는 주체사상의 이북 공화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주체사상의 고전적 문헌「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상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은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서 나서는 선차적인 요구입니다. 혁명과 건설은 사람들의 의식적인 활동인 것만큼 사상에서 주체를 세워야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상에서 주체
이북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상에서 자기 나라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며 실천합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지혜와 힘으로 풀어나가는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령과 당이 노선과 정책을 내어놓으면 그것을 스스로의 일로 해서 적극성을 발휘해서 실천합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을 온 나라에 유일사상체계로 확고히 서있고 민중이 그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이 수령을 따르고 당의 정책을 유일사상체계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상으로 무장되고 수령과 당의 영도에 따라 미국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잿더미로 된 나라를 복구하고 더 잘 건설했고 나라가 민중생활을 완전히 담보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생산에서 혁명에서 나서는 문제는 당의 노선인 군중로선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에 민중이 그 정책을 스스로의 지혜로 세웠고 잘 이해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의 군중로선은 당의 지도가 대중 위에 군림하지 않고 민중의 절실한 문제를 민중이 스스로의 지혜로 방도를 찾고 스스로의 힘을 조직하여 과업과 분공을 정하고 달려들며 당이 하는 일은 그 과업을 시종일관 책임적으로 방조하는 자리에서 일을 합니다.
이러한 군중로선에 의한 전형으로서 사회주의 농촌경리의「청산리정신」과「청산리사업방법」이 있고, 사회주의적 생산의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대안의 사업체계」가 있습니다. 이 군중로선으로 이북 사람들은 집단주의적 도덕을 덕목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새로운 사회주의적 애국심을 낳게 했습니다.
정치에서 자주
이북 사회의 정치제도를 보면 다른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제도와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북의 정치는 남의 제도를 따르거나 남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 기본은 정책을 규정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북의 모든 노선과 정책을 자주적으로 규정하고 집행합니다. 결코 남이 해놓은 일을 흉내내지 않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노선과 정책을 규정합니다.
정치에서 자주성은 대외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도발에 대해서 이북은 한번도 자주성을 굽힌 일은 없습니다. 전쟁의 바로 코앞에 와 있어도 의연히 ‘전쟁에는 전쟁으로’라고 나라의 존엄을 지켰으며 ‘협상에는 협상으로’라고 하면서 나라의 평화를 지켰습니다.
경제에서 자립
이북 사회는 경제에서 자립의 원칙을 견지하고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자립적 민족경제가 있어야 나라의 독립을 튼튼히 할 수 있고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국방에서 자위를 확고히 보장할 수 있고 민중에게 풍요로운 물질문화적 생활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나라들의 그 혹독한 경제봉쇄 속에서 엄청난 자연재해로 식량이 동이 난 상황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지켜냈고 미국의 핵공갈 속에서도 의연히 맞서나갈 수 있는 것은 자립적 경제의 토대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북이 지난 시대 소련의 대국주의에 굴복해서 이른바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분업이라는「코메콘」에 들어가 경제를 남의 나라에 의존했더라면 이북의 공화국은 그 존재가 지금쯤 의심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자원에 튼튼히 의존해서 자기 민중의 창조력에 의하여 물질기술적 토대를 이루었기에 미제의 경제봉쇄를 이겨낼 수 있었고 미제의 핵공갈에 의연히 군사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 위에 올려놓아 미제의 핵공갈을 물리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국방에서 자위
감일성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제국주의자들 앞에서 평화를 구걸하지도 않습니다. 민족적 독립과 평화를 고수하고 혁명위업의 승리를 이루어가기 위한 가장 옳은 길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에 해방전쟁으로 맞서고 반동들의 반혁명적 폭력에는 혁명적 폭력으로 맞서며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전쟁책동에 언제나 준비있게 대처해나가는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이와 같은 가르침에 따라 당은 자위적 군사로선으로 4대군사로선을 세웠고 민중은 그 군사로선을 완수해나가는 데에 떨쳐나섰습니다. 즉, 전인민의 무장화, 전군의 간부화, 전국의 요쇄화, 무장의 현대화입니다. 이제 어떤 제국주의 나라도 이북 공화국에 대해 전쟁으로 공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디 전쟁을 도발하면 우리 반도에서만 전쟁터로 되겠습니까. 그들의 국토도 잿더미로 될 것입니다. 그래 마침내 ‘조선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라고 그들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문화에서 민족성
이북 사회의 문화는 사상에서 주체를 세우는 데에 민족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상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고 대중의 문화기술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민족적 형식에 혁명적, 사회주의적 내용을 가진 문화, 자기인민의 감정에 맞고 노동계급적 선이 선 주체적인 문화를 건설하여야 사람들의 사상정신생활을 건전하게 할 수 있으며 사상에서 주체를 더 잘 세울 수 있습니다.”
평양 시내에 세워진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민족적 형식을 가진 현대적 건물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음악에서도 다양한 민족악기를 현대화해서 그들 악기를 교향곡에 도입하여 민족적 정서가 풍기는 현대음악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가극에서는 집단주의를 발휘해서 규모가 큰 집체적 작품을 특색있게 만들어내고 있으며 문학적 작품과 예술적 작품에서도 집체적 작품이 많습니다.
김정일 총비서는「종자리론」이라는 주체적 사회주의 예술이론을 창조하여 이북 예술창조에서 형식과 내용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예술작품의 사실적 전형을 혁명과 건설의 현장에서 그 종자를 찾고 예술적 형상으로 구성한다는 것입니다.「역사의 대하」와 같이 지난 1994년의 전쟁 직전에 이른 조미간의 외교전쟁과 이에 대한 미제의 침략에 대한 단호한 군사적 대처라는 엄중한 정세 속에서 수령과 지도자 그리고 외교 일꾼과 작전지휘관, 병사들, 민중들에서 예술형상의 종자를 찾아 구성한 이 작품은 이북 예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 민족의 역사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서 단군릉을 발굴하여 외세의 문화와 사대주의에 의하여 전설 속에 파묻힌 민족의 위대한 근원을 밝혀 주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체사상은 학술적 사업에서도 철저히 관철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북 사회는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 총비서가 심화발전시킨 주체사상이 온 사회에 관철되어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자주성을 가장 중히 여기는 나라로 되고 있습니다.
7. 끝으로
이북 사람들의 사상은 같은 한 겨레의 사상이며 그 사상으로 하여금 미제의 핵위협 속에서 숨통을 조이는 봉쇄 속에서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북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혹독한 전쟁위협 속에서 그 엄청난 자연재해 속에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세계 어느 나라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당당히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장기인 끈기와 주체사상으로 무장되고 수령을 중추로 하고 당을 심장으로 하여 일심동체로 단결한 이북 동포들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핵공갈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북도 마주 핵을 들고나와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핵공갈이 먹어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핵무기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기능이 그 성능이 어떻든 그 파괴력이 어떻든 서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내고 만다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미사일도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전쟁을 우리 땅에서만 할 수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힘 자랑을 하고 뽐내지만 그들의 목통에는 이북 사람들이 허리끈을 조이고 장만한 비수가 겨누어지고 있습니다.
세상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만 전에는 이북을 말할 때는 꼭 욕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6.15 공동선언의 결과입니다. 이남과 이북의 최고위 두 분이 우리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15공동선언에서 우리의 분단문제는 사상의 문제, 즉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상도 다를 수 있고 정치적 신조도 다를 수 있으며 종교적 신앙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데에서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통일은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면 우리 후대들이 제도와 사상을 하나로 아우르는 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대에 6.15공동선언에 따라 하나의 나라, 우리민족만이 가지는 특수한 형태의 민족국가를 창조해내어야 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선은 바로 통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반드시 실천되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의 가장 큰 선을 이루어내도록 합시다.
(200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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