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에게 편지 쓴 것을 읽다가 그 안에 손자와 싸우다가 화해한 사연이 있어 거기에서 화해가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오길래 모두가 읽어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내 블로그에 얹어 둡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쉽게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에게
그 사이 잘 지냈는가.
오늘 보낸 편지 확인하다가 아주 옛날에 ○에게 보낸 메일이 4월 16일에야 확인이 되던구나. 나도 그 사이 메일을 자주 못 보내었고 경아의 소식도 뜸해졌고....
얼마 전에 어머니 모시고 여행도 다녀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후로는 어떤지 궁금하구만.
요즘 나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책도 열심히 보고 젊은 청년들과 자주 만나 이야기하는 재미로 지내지.
이제 봄도 오고 기후도 좋아 심장부담은 덜 하지만 늙은 몸이 계절에 잘 맞추지 못해 신경통과 이유없이 고단함은 해마다 더한 것 같애.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삶은 손자놈들과 노는 것이구먼. 며칠 전에 친손자, 외손자가 할배를 사이에 두고 질투와 시기로 싸우던 걸.
외손자놈은 지금 일곱살, 아직 학교에 들지는 못해도 유치원 다니면서 글을 알아서 책을 잘 읽어. 할배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재롱을 피우지. 그런데 이놈은 할배는 아주 무식하다고 치부하는 것 같애.
이놈이 제 에미에게 나를 두고 하는 말이
" 할배가 박사라는데 맞아?"
그리고는
" 박사라면서 탱크 조립도 잘 못하고 뭐 그래. 할아버지는 박사라도 똑똑 박사는 아닌가봐. 엄마, 할배, 엉터리 박사지?"
이런! 어굴할 데가 있나.
친손자놈은 지금 36개월이 막 넘은 어거지부리는 놈인데, 할배 것은 모두 "내 꺼야!" 한 마디로 빼앗아버리는 놈이야.
먼저번에 손전화기를 잃어버린지라 전화기를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에,
" 안돼!"
나는 한 마디로 거절했는데 이놈은 그래도
" 전화기 냇!".
그래서 제 에미가 자기 것을 주며
" 여깄다."
라고 했더니 이놈은 손으로 밀어부치고 하는 말이
" 내맘에 드는 전화기 냇. 내마음에 드는 것, 내 꺼얏!"
하고선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 내마음에 드는 것 내 꺼얏!"
하는 수 없이 전화기도 몰수당했지.
MP3 를 귀에 꽂고 총선 예측방송을 들으려고 했더니, 이놈이 이것마저
" 귀에 끼는 것, 이리 냇."
그래서 내가
" 이것도 네 맘에 드냐?"
" 응, 내맘에 들어, 내 꺼얏."
" 오냐, 이놈아 니 다햇."
요즘은 손자놈과 노는 것이 이놈들과 싸우는 거지. 그래도 이것 말고 세상에 더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에 놈이 위태한 짓을 하기에 못하도록 붙들었더니 이놈이 화가 단단히 나서 내 얼굴에 손틉을 세워 할켜 자욱이 났겠다. 집에 돌아와 보니 껍질이 벗겨 피가 나더군.
다음날 이놈을 만나서
" 산아, 어제 네가 할배를 할켜서 피가 나잖아!"
하고 따졌더니, 이놈 대답이 걸작,
" 산이가 안 그랬쪄!"
어처구니없이 오리발이다.
그래서 계속 추궁했지만, 이놈의 능청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놈이 나의 다른 쪽 뺨을 살짝 할키더니, 그쪽을 가리키면서
" 이건 산이가 했쪄."
그리곤 제가 어제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 이건 산이가 안했쪄."
" 그러면 누가 했어, 이놈아!"
이놈은 완전히 오리발이다.
" 할배, 그건 곰쥐가 했쪄!"
그리곤 제가 타고 있는 자동차를 발로 밀며 저쪽으로 달아나버린다.
" 허허... 이놈봐라."
그래도 한참 있더니 내 한테 안겨들어 상처를 만지면서
" 할배, 많이 아퍼? 산이가 호 해주까?"
" 호오 호오"
" 오냐, 이제 다 나았다."
이렇게 해서 화해가 이루어졌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오더니 지금은 비가 그치고 구름만 잔뜩 껴 있구나.
그럼 내내 건강하고 집안에 언제나 평화가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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